(사진 자리-_-; 찾는대로 올릴 예정)

주말 아침에 눈을 뜨면 마루에 있는 TV에서는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나오는 시간이다.
언제부터인가 아침에 꼭 빼놓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이 되었는데,
내가 가지 못했던 곳을 보는 새로움과
내가 갔다왔던 곳을 다시 보는 반가움이 교차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다녀왔던 곳을 다시 볼 때는 좀 더 복잡미묘한 생각이 떠오르는데,
예전에 찍은 사진을 다시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때 그 장소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

오늘 아침은 아비뇽에 들렀다.
갈 때마다 연극제가 열리던 때라 숙소를 잡기 쉽지 않았고, 그때마다 가끔 보이는 한국 극단의 한국어 포스터가 그리 반가웠던 그 때.

Lonely Planet 한 권을 들고 겁도 없이 가고 싶은 곳을 돌아다니며,
처음 보는 사람들과 전세계의 말과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이야기 하던 그 때.

그런데 Lonely Planet이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장소는 아비뇽에서 베를린으로 옮겨간다.
암스테르담에서 야간기차를 타고 눈을 뜨니 곧 베를린이라는 옆자리 프랑스인의 이야기.

지금이야 베를린 중앙역이 새로 생겼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베를린은 구 서베를린의 동물원역과 동베를린의 중앙역(동역) 두 군데가 큰 역이었다.
막 눈을 떠 LP의 베를린쪽은 채 보지도 못했던 상태. 당연히 나는 Hauptbahnhof(중앙역)의 이름을 믿고 동역에 내렸다.

아뿔싸. 여긴 어딘가.
TV에서 보던 베를린도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왠 공사판과 주거지역이 덩그러니 나타난다.

그리고 저만치서 왠 부랑자로 보이는 사람이 내게 다가오더니 25페니히 동전을 하나만 달라고 한다.
독일어를 하나도 몰랐으면 되었건만 그때만 해도 독일어가 조금 되던 시절이라,
그 말을 알아듣고는 약간의 두려움에 아무 망설임없이 동전하나를 건넸다.

그리고는 다시 역으로 돌아서 주위의 숙소정보를 알아알아 근처의 한 동독시대의 건물을 개조한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아무리 기차에서 잠을 잤다고 해도 야간열차는 피곤한 탓인가
멀리 나가기는 힘이 들어 그냥 숙소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리다 수퍼에서 비누를 하나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점심때까지는 그냥 신문이나 보자 하다가 그래도 있다 저녁에 어디 갈까하고 LP를 꺼내 베를린편을 읽기 시작했다.

베를린편 첫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동베를린지구에는 25페니히 동전을 달라는 거지가 많음. 조심하시오."

말로만 듣던 Lonely Planet의 정확함을 새삼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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